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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월명사(月明師), 도솔가, 제망매가, 삼국유사,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경덕왕 즉위 19(760)년 4월 초하룻날 두 개의 태양이 나란히 나타나 열흘 동안이나 없어지지 않았다. 일관이 진언하기를 인연 있는 승려가 산화공덕(꽃을 뿌려 부처님께 공양, 공덕을 닦는 것)을 하면 그 재앙이 물러나리라고 했다. 이에 왕은 조원전에다 정결히 단을 설치해 두고 청야루에 나가 인연 있는 중을 기다렸다. 그때 월명사란 이가 들 남쪽 길을 가고 있었다. 왕은 사람을 시켜 불러 오게 했다. 그리고 단을 열고 기도문을 짓도록 명했다. 월명사는 왕의 명을 사양하여 말했다. “승은 단지 국선의 무리에 속해 있으므로 그저 향가나 알 뿐 범음(불교의 찬송가 격긴 범패를 가리킴)에는 익숙지 못하나이다.” 왕은,“그대가 이미 인연 있는 승려로 지적되었으니 비록 향가를 쓰더라도 좋다.”고 말했다.월명사는 마.. 더보기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 중국 사소공주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진평왕 연대에 지혜란 법명을 가진 비구니가 있어 어진행적이 많았다. 지혜는 안홍사에 머물고 있었는데 불전을 수리하려는 생각을 했으나 재력이 미치지 못했다. 어느 날 밤의 꿈에서다. 맵시가 예쁜 그리고 주옥으로 머리를 장식한 여선이 와서 위로하며 말했다. “나는 선도산(경주의 서산)의 신모다. 네가 불전을 수리하려는 것이 반가와 금 열 근을 시주하여 돕고 싶다. 모르지기 내가 앉아 있는 자리 밑에서 금을 가져가 보존 세 상에다 입히고, 벽에는 53불과 육류성중과 모든 천신과 오악(신라 때에 5악이 있어 동은 토함산, 남은 지리산, 서는 계룡산, 북은 태백산, 중은 부악, 또는 공산이라고도 함)의 신군들을 그려라. 그리고는 매년 3월과 9월의 10일에 선남선녀들을 모아 널리 일체 중생들을 위해 점찰 법회를 .. 더보기
명랑신인(明朗神印), 명랑법사 이야기, 청색 구슬을 삼키는 태몽을 꾸고 태어난 법사,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금광사 본기>에 의하면 명랑법사는 신라에 태어나서 당나라에 들어가 도를 배웠다. 당나라에서 북쪽으로 돌아올 때에 해룡의 청에 의하여 용궁에 들어가 비법을 전해 받고, 그리고 황금 1천 냥(또는 1천근이라 함)을 시주 받아 지하를 잠행하여 본가의 우물 밑으로 솟아나왔다. 이에 그 집을 희사하여 절을 삼고 용왕이 시주한 황금으로 탑상을 장식하매 광채가 특이했다. 그래서 절 이름을 금광사(승전>에는 금우사라 했는데 잘못임)라고 했다. 명랑은 법사의 이름이고 그의 자는 국육이다. 신라 사간(신라 관등 제8위인 사찬) 재량의 아들로서 어머니는 남간부인, 또는 법승랑이라 했는데 소판 무림의 여식 김 씨이다. 바로 자장율사의 누이동생이었다. 재량에겐 세 아들이 있었으니 맏아들은 국교대덕, 다음은 의안대덕, 명랑법사는.. 더보기
혜통강룡(惠通降龍), 석혜통에 관한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2/2 - 2/2 “너희들은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아라.” 혜통은 그 사기병의 목에다 뺑 돌려 금을 그어 놓고 다시 외쳤다. “너희들은 각각 상대방의 목을 살펴보아라.” 군졸들은 각자 상대의 목을 보았더니 모두들 목에는 붉은 금이 돌려져 있었다. 군졸들은 서로 보며 경악했다. 다시 혜통은 외쳤다. “내가 만양 이 병목을 자르면 너희들의 목도 잘라질 테니 어떻게 할 테냐?” 군졸들은 부리나케 내달아 모두 붉은 금이 돌려진 목을 하고 왕에게 뵈었다. 왕은 ‘왕화상의 신통함을 어찌 인력으로 도모해 낼 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혜통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왕녀가 문득 병이 들자 왕은 혜통을 불러 구명케 했다. 병은 곧 나았다. 왕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자 혜통은 정공이 독룡의 작해를 입어 애매하게 죽음을 당했음을 얘기했.. 더보기
혜통강룡(惠通降龍), 석혜통에 관한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1/2 - 1/2 석혜통, 그의 가계는 미상이다. 중이 되기 전 그의 집은 남산의 서편 은천 골짜기(지금의 남간사 동쪽 마을임) 어귀에 있었다. 어느 날 혜통은 그의 집 동쪽에 흐르고 있는 시내에서 놀다가 물개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 그 뼈는 동산에다 내버렸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동산에 버린 그 물개의 뼈가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었다. 혜통은 피가 흐른 자취를 따라 찾아가 보았다. 물개의 뼈는 물개가 살던 구멍으로 되돌아가 다섯 마리의 새끼를 안고 있었다. 혜통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한참 동안 경이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거듭 감탄해 마지않다가 깨달은 바 있어 문득 숙세를 버리고 불승에의 길을 택했다. 이름을 혜통이라 고쳤다. 혜통은 당나라로 갔다. 무외삼장을 찾아가 수업을 청했다. 무외삼장은 ‘동이의 족속 따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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