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통, 마룡을 굴복시키다> - 1/2
석혜통, 그의 가계는 미상이다. 중이 되기 전 그의 집은 남산의 서편 은천 골짜기(지금의 남간사 동쪽 마을임) 어귀에 있었다.
어느 날 혜통은 그의 집 동쪽에 흐르고 있는 시내에서 놀다가 물개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 그 뼈는 동산에다 내버렸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동산에 버린 그 물개의 뼈가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었다. 혜통은 피가 흐른 자취를 따라 찾아가 보았다. 물개의 뼈는 물개가 살던 구멍으로 되돌아가 다섯 마리의 새끼를 안고 있었다. 혜통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한참 동안 경이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거듭 감탄해 마지않다가 깨달은 바 있어 문득 숙세를 버리고 불승에의 길을 택했다. 이름을 혜통이라 고쳤다.
혜통은 당나라로 갔다. 무외삼장을 찾아가 수업을 청했다. 무외삼장은 ‘동이의 족속 따위가 어찌 불도를 닦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 보냐.’고서 혜통에게 끝내 수업해 주려 하지 않았다. 혜통은 그렇다고 해서 가벼이 무외의 곁을 떠나가지 않고 2년 동안을 부지런히 섬겼다. 그래도 무외는 혜통에게 끝내 수업해 주려 하지 않았다.
혜통은 마침내 발분, 뜰에 나가 머리에 화로를 이고 섰다. 잠시 뒤 정수리가 터지면서 우레와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무외삼장은 소리를 듣고 와서 혜통의 그 모양을 보았다. 무외는 혜통의 머리 위에서 화로를 거두고 터진 곳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주문을 외었다. 터진 정수리는 곧 종전대로 아물어 붙고 그 자리엔 ‘왕(王)’자 무늬의 상흔이 남았다. 그래서 혜통을 ‘왕화상’이라 부르고, 무외는 그를 무척 애중히 여겨 드디어 그에게 인결(도법의 요결)을 전수했다.
그때 당나라 황실의 공주가 병이 들었다. 고종은 무외삼장에게 구병해 줄 것을 청했다. 무외는 혜통을 천거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했다. 혜통은 명을 받고서 별거하여 희 빛깔의 팥 한 말을 은그릇에 담고 주술을 부렸다. 그 흰 빛깔의 팥들은 모두 희 빛깔의 갑옷을 입은 신병으로 변했다. 그리고 병마와 싸웠다. 그러나 흰 빛깔의 갑옷을 입은 신병들은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혜통은 다시 검은 빛깔의 팥 한 말을 금그릇에 담고 주술을 부렸다. 그 검은 팥들은 모두 검은 빛깔의 갑옷을 입은 신병으로 변했다. 흑, 백 두 빛깔의 신병으로 하여금 연합하여 병마를 공격하게 했다. 그러자 병마는 교룡으로 나타나 도망해 나가고 공주의 병은 드디어 쾌유되었다.
혜통에게 쫓긴 교룡이 자기를 쫓아낸 것에 원한을 품고서 본국, 즉 신라의 문잉림으로 와서 인명을 마구 해쳐 댔다. 이때 정공이 당나라로 사신 왔다가 혜통을 보고서 알렸다.
“스님께서 쫓은 독룡이 본국으로 와서 작해가 막심합니다. 빨리 가서 제거하도록 하십시오.”
혜통은 정공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당 고종 16년, 즉 문무왕 즉위 5(665)년이었다. 혜통은 돌아오자 곧 문잉림에 깃든 그 독룡을 축출했다.
그 독룡은 이번엔 정공에게 원한을 품고서 버드나무로 변신하여 바로 정공의 집 대문 밖에 돌아났다. 정공은 그 버드나무가 자기에게 원한을 품고 독룡의 변신인 줄은 알 턱이 없고, 그저 그 버드나무의 짙푸른 모양이 좋아서 지독한 애착만 느낄 뿐이었다.
신문왕이 붕어하고 효소왕이 즉위하여 신문왕의 능터를 닦고 장로를 만들게 되자 정공의 그 버드나무가 바로 장로를 막아서게 되었다. 장로를 책임진 관원이 그 버드나무를 배 내려고 했다. 정공은 성이 나서 말했다.
“차라리 내 목을 벨지언정 이 나무는 못 벤다.”
관원은 이 사실을 왕에게 아뢰었다. 효소왕은 대노해서 법관에게 명했다.
“정공이 왕화상의 신술을 믿고서 장차 불손한 일을 꾸미려 왕명을 무시, 거역하고 제 머리를 베라고 말했으니 마땅히 그가 좋아하는 대로 하라.”
마침내 정공을 베고, 그의 집을 헐어 묻어 버렸다. 그리고 조정의 의논이 왕화상과 정공의 사이가 매우 절친했으므로 왕화상이 정공을 죽인 일로 하여 필경 조정에 대해 증오를 품겠으니, 이쪽에서 먼저 그를 처치해 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졸을 풀어 왕화상, 즉 혜통을 찾아 체포하게 했다. 혜통은 그때 왕망사에 있다가 군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지붕 위에 올라가 사기로 된 병을 손에 들고서 붉은 빛깔의 먹물에 붓을 적시며 군졸들을 보고 외쳤다.
- 다음 화에 계속 -
<<삼국유사>>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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