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국유사

원광서학(圓光西學), 원광법사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3/5

반응형

 

<원광, 중국에 유학가다> - 3/5

 

다음, 동경 안일호장(‘안일은 퇴직의 뜻, ‘호장은 향직 이름임) 정효의 집에 소장되어 있는 고본 <수이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원광법사전이 실려 있다.

 

원광법사의 속성은 설씨, 서울[경주] 사람이다. 당초 중이 되어 불법을 공부하던 중 30세 때에 조용히 수도할 생각으로 홀로 삼기산(지금 경상북도 안강 서남쪽에 있음)에 들어가 거처하고 있었다. 그 뒤 4년이 되어 한 비구가 역시 그 산으로 들어와 원광법사의 거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다 따로 난야(‘아란야의 약칭. 수도에 적합한 정한처로 흔히 절을 일컬음)를 짓고 지낸지 2, 그 위인이 강맹하고 주술을 닦기를 좋아했다.

 

어느 밤이다. 원광법사가 독좌하여 송경을 하고 있는데 홀연히 신령의 소리가 있어 법사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잘한다! 잘한다! 그대여 수행이야말로. 무릇 수행한다는 자들 많기도 하더라만 법대로 하는 자는 드물더라. 이제 이웃에 있는 비구를 보매 곧장 주술을 닦지만 소득은 없고 공연히 지껄여 대는 소리가 다른 사람의 정념만 훼쇄할 뿐이지……. 또 그 거처가 나의 다니는 길에 장애가 되고 있어 매양 오갈 때마다 몇 번이나 미운 마음이 발작했으니, 법사는 나를 위해 그로 하여금 다른 데로 옮겨 가도록 알려주게나. 만약 그가 오래 그곳에 머물러 있다면 아마 내가 그만 죄업을 짓게 될 것 같다.”

 

이튿날 원광법사는 그 비구에게로 가서 알렸다.

 

내가 지난밤에 산령의 말을 들었는데 비구는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소. 그렇지 않으면 여앙이 있으리다.”

 

그 비구는 대답했다.

 

수행이 지극한 이도 마귀에 홀리는 군. 법사는 여우 귀신의 말을 무얼 그리 걱정하오?”

 

그날 밤에 신령은 원광법사에게 또 왔다.

 

앞서 내가 알리 그 일에 대해 비구는 뭐라고 답하던가?”

 

원광법사는 신령의 성냄을 두려워하여 이렇게 대답했다.

 

반응형

 

아직껏 말하지 못하고 있으나 만약 굳이 권고한다면 어찌 감히 듣지 않을까 보오.”

 

신령은 말했다.

 

내가 이미 다 들었는데 법사는 무얼 그렇게 보태서 말하는가. 법사는 다만 잠자코 내가 하는 것이나 볼일이다.”

 

신령은 작별하고 갔다. 밤중에 우레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이튿날 보았더니 산이 무너져 내려 그 비구가 거처하고 있던 난야를 묻어 버렸다. 신령은 또 왔다.

 

법사는 보니 어떠한가?”

 

원광법사는 대답했다.

 

보고서 매우 놀랍고 두려워했소.”

 

신령은 말했다.

 

내 나이는 3천 년에 가깝고 신술은 으뜸이지. 그까짓 것은 한 조그만 일이데 무어 놀랄 건더기가 되려고? 사실은 내가 앞으로 다가올 일은 모르는 게 없고, 온 천하의 일은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지. 이제 생각해 보니 법사가 단지 이곳에 있기만 해서는 비록 자리의 행은 있으나 이타의 공(‘자리이타는 불교 수행의 두 방면이다. 자기를 위하여 자기의 수양을 주로 하는 것이 자리’, 이것은 소승이다. 타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여 행동하는 것이 이타’, 이것은 대승이다. 자리이타둘을 완전하고 원만하게 수행하는 것에 불교인의 이상이 있음)은 없게 되지. 현재에 고명을 선양해 두지 않으면 미래에 좋은 과보를 거두지 못하는 법이다. 법사는 왜 중국으로 가서 불법을 가져다 이 나라의 혼미한 무리들을 인도하지 않고 있는가?”

 

원광법사는 답했다.

 

중국에 가서 도를 공부함은 저의 본래의 소원이나 해륙이 아득히 막혀 스스로 통할 길이 없기 때문일 뿐입니다.”

 

신령은 중국으로 가는 데 필요한 계책들을 원광법사에게 자상히 일러 주었다. 원광법사는 그 신령의 말대로 행하여 중국으로 갔다.

 

- 다음 화에 계속 -

 

<<삼국유사>> 제4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