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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낙산 2대성(落山二大聖), 관음(觀音), 정취(正趣), 조신(調信), 낙산사의 배경, 의상, 원효,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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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의 두 보산 간음, 정취, 그리고 조신> - 1/3

 

옛날, 의상법사가 처음 당나라에서 돌아와서다. 법사는 관음보살 진신이 해변(낙산이 있는 해변을 말함)의 굴 안에 머물러 있음을 들었다. 그래서 이름을 낙산(지금 강원도 양양에 있음)이라고 했다. 그것은 서역의 보타락가산(이곳 말로는 소백화라고 번역됨)이 바로 백의대사(관음보살을 가리킨다. 항상 흰 옷을 입고 흰 연꽃에 앉아 있는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머물러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 산의 이름을 따 와서 지은 것이다.

 

의상법사는 재계한 지 7일 만에 새벽 물 위에 포단을 띄우고 올라탔다. 용천팔부들이 시중을 들며 구 안으로 의상법사를 인도해 들어갔다. 의상법사는 굴 안의 허공을 향해 배례했다. 그러자 허공에서 수정 염주 한 꿰미가 나와 의상법사에게 쥐어졌다. 의상법사가 그 염주를 받아 물러나오자 동해의 용이 또한 여의보주 한 알을 바쳐왔다. 의상법사는 그 염주며 여의주를 받들고 나와서 나와서는 다시 7일간을 재계했다. 하여 굴 안으로 들어가 마침내 관음 진신을 보았다. 관음 진신은 의상법사에게 일렀다.

 

바로 앉은 자리 위의 이 산꼭대기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나리라. 그 자리에다 전우를 짓는 것이 좋으리라.”

 

의상법사는 관음 진신의 이 계시를 받고 굴을 나왔다.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나왔다.

 

그 자리에다 금당은 짓고, 관음상을 소조하여 모셨다. 상은 그 원만한 얼굴이며 아리따움이 흐르는 몸매가 틀림없는 천생의 그것 같았다. 이렇게 금당을 짓고 소상을 모시노라니 그 대나무는 도로 없어지는 것이었다. 비로소 그곳이 바로 관음 진신이 머무는 곳임을 알고 그 절을 이름하여 낙산사라고 했다. 의상법사는 관음께서 받은 그 수정염주와 동해의 용에게서 받은 그 여의보주를 불전에 안치해 두고 그곳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원효법사가 그곳을 순례하기 위해 왔다. 처음 그 남쪽 들녘에 이르렀을 때 흰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논에서 벼를 베고 있었다. 원효법사가 희롱으로 그 벼를 좀 달라고 청하자 여인은 벼가 흉년이 들었노라고 역시 희롱조의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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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법사가 길을 걸어 다리 아래에 이르러서다. 한 여인이 월수(여성들의 월경 때에 배출되는 액)가 묻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원효법사가 그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하자 여인은 월수를 빨아 낸 더러운 물을 떠서 바쳤다. 원효법사는 그 물을 내쏟아 버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그때에 들에 서 있는 소나무 위에서 한 마리 파랑새가 휴제호화상이라고 부르고는 홀연 간 곳 없이 사라지고, 그 나무 아래에는 한 짝의 신이 벗겨져 있음을 보았다. 원효법사는 드디어 낙산사에 이르렀다. 관음좌 아래에 앞서 보았던 그 벗겨진 신의 다른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원효법사는 비로소 앞서 오던 길에서 만났던 그 여인들이 바로 관음의 진신임을 알았다. 그래 당시 사람들은 들에 선 그 소나무를 관음 솔이라고 불렀다. 원효법사는 그 굴에 들어가 다시 관음의 진용을 보려고 했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나 들어가 보지를 못하고 떠났다. 그 후대에 굴산조사 범일이 당 문종 연간 (827~835)에 당나라로 들어갔다.

 

명주에 있는 개국사에 갔더니 왼쪽 귀가 떨어져 나간 한 중이 뭇 승녀들 가운데 한 말석을 점하고 있었다. 그 중은 범일에게 말했다.

 

나 역시 신라 사람입니다. 집이 명주계 익령현(강원도 양양의 옛 이름) 덕기방에 있습니다. 스님이 후일 본국에 돌아가시거든 꼭 나의 집을 지어 주십시오.”

 

그 뒤 범일은 두루 대중이 모이는 법석들을 돌아 염관에게서 법을 얻어(사적의 시말은 범일사의 본전에 실려 있음) 당 선종 원년, 즉 신라 문성왕 즉위 9(847)년에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먼저 굴산사를 창건하여 교를 전했다.

당 선종 12, 즉 헌안왕 즉위 2(858)215일 밤, 꿈에 전날 당나라 개국사에서 만났던 그 중이 범일사의 창 아래에 와서 말했다.

 

지난날 명주 개국사에서 법사와 한 가지 약속한 바가 있어 법사가 이미 승낙까지 했거늘 그리 늦으오?”

 

- 다음 화에 계속 -

 

<<삼국유사>>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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