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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남백월 2성(南白月二聖), 노힐부득(努肹夫得), 달달박박(妲妲朴朴),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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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백월산의 두 성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 3/3

 

낭자가 물을 몸을 담그고 나서 조금 뒤, 그 통 속의 물에서는 진하디 진한 향기가 풍겨오고 물은 금물로 변해갔다. 노힐사는 내심 크게 놀랐다. 낭자는 노힐사를 보고 말했다.

 

우리 스님께서도 여기서 목욕하셔야 돼요.”

 

노힐사는 마치 못해 그 목욕탕 속으로 들어갔다. 문득 정신이 상쾌, 청량해짐을 느끼게 되고 살갗이 금빛으로 변해졌다. 뿐만 아니라 그 곁을 돌아보니 홀연 한 좌의 연대가 생겨났다. 낭자는 노힐사에게 그 연대 위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나서 낭자는 말했다.

 

나는 관음보살이랍니다. 대사가 대보리(허무상의 대도, 또는 대정각의 지혜, 곧 불과임)를 이룩하시도록 도우러 왔지요.”

 

말을 마치자 그 낭자는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달달박박은 노힐이 오늘밤에 필경 계를 더럽혔을 테니 가서 웃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노힐사에게로 왔다. 와서 노힐이 연화대에 앉아 미륵 존상이 되어 광명을 내비치며 몸이 불그레한 금빛으로 채색되어 있음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올렸다. 그러면서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노힐사는 그 내력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박박은 한탄하여 말했다.

 

내가 마음에 구애를 두어 다행히 대성을 만나고도 도리어 조우하지를 못했구나! 대덕은 지극히 인자하여 나보다 앞서 성불을 했으니 바라건대 지난날의 우정을 잊지 말고 일을 모름지기 함께 했으면 한다.”

 

노힐사는 통 속에 아직 금물이 남아 있으니 그대로 목욕을 하라고 알려 주었다. 박박이 목욕하고 나더니 역시 노힐사의 경우처럼 무량수불을 이루었다. 두 존이 마주 대하여 엄연한 모습들이었다. 백월산 아래의 마을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는 다투어 와서 우러렀다. 그리고 드물고도 드문 일이라고 감탄들을 했다.

 

두 성인은 그들을 위하여 불법의 요의를 설하고, 그리고는 전신이 구름을 타고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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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현종 44(755)년에 신라 경덕 왕이 즉위(<고기>에는 천감 24년 을미에 법흥왕이 즉위라고 했다. 선후를 뒤바꿈이 어찌 이같이 심한가. 당나라 현종 44년 천보 14년 기실 경덕왕 즉위 14년에 해당된다. 여기서 현종 44년을 경덕왕 즉위년으로 알고 기록한 것은 잘못임)하여 이일을 전해 듣고 정유년(경덕왕 즉위 16(757)년임)에 사자를 백월산으로 보내어 대가람을 세우고 백월산 남사라고 불렀다. 절은 당 대종 2, 즉 경덕왕 즉위 23(764)715일에 낙성되었다. 다시 미륵존상을 만들어 금당에 안치했다. 또 미타상을 만달어 강당에 안치했다. 남은 금물이 부족하여 충분히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미타상에도 역시 얼룩이 있다.

 

이상의 일을 두고 논의해 보면 그 낭자는 부녀의 몸으로 응현(, 보살이 중생을 교화 구제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근성에 대하여 각기 상응하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이 세상에 몸을 나타내는 것을 말함)하여 섭화한이라 하겠다. 화엄경에 마야부인 선지식(지식, 선우, 선친우라고도 하며, 부처의 교법을 타인에게도 일러 주어 그로 하여금 고통 세계를 벗어나 이상경에 이르게 하는 이를 말함. 곧 불연을 맺게 하는 이를 말한다. ‘마야부인은 석존의 어머니)11지에 기우하여 부처를 낳음이 해탈문을 환상함과 같다 했으니, 이제 낭자의 해산은 그 뜻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낭자가 준 시를 보면 애처롭고 고와서 사랑스러운 데가 있으니 은연히 천선의 의취를 풍기고 있다. 아아 만약 낭자가 중생을 수순할 것을 알지 못하고 다라니(범문을 번역하지 않은 채 진언, 밀어로써 그대로 읽거나 말함. 불교에서의 주문)를 말했던들 그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박박에게 준 시의 그 끝 구절, ‘자비하신 화상이여 노여워 마오는 으레 청풍에 한 자리함을 노여워 마오라고 함직했으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음은 대개 유속의 말과는 같지 않게 하려고 했던 때문이다.

 

- 끝 -

 

<<삼국유사>>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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