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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미륵선화(彌勒仙花), 미시랑(未尸郞), 진자사(眞慈師), 신라의 화랑도, 화랑의 국선,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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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선화 미시랑과 진자사> - 2/2

 

그 절의 중들은 진자의 생각이 허황한 것이라 여기면서도 그의 간절한 정성을 보아 그저 이렇게 알려 주었다.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천산이 있소. 예로부터 현철들이 머물러 있어 은밀한 감응들이 꽤 있나 본데 어찌 거기로 가지 않았소?”

 

이 말대로 좇아 진자는 그 천산으로 갔다. 진자가 산 아래에 이르자 그 산의 산령은 노인으로 변해 출영했다.

 

무슨 일로 여기에 왔소?”

진자는 대답했다.

 

미륵선화를 비옵고 싶어서입니다.”

 

그 노인은 말했다.

 

앞서 수원사 문 밖에서 이미 미륵선화를 뵈었는데 다시 무엇을 찾겠다고 여기에 왔소?”

 

노인의 이 말을 듣고 진자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즉시 본상인 흥륜사로 돌아왔다.

 

진자가 본사로 돌아와 달포 가량 지나서다. 진지왕이 소문을 듣고서 진자를 불렀다. 왕은 그 일의 전말을 묻고 나서 말했다.

 

그 도령이 자칭하여 서울 사람이라고 했다면 성인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텐데 어째서 도성 안을 찾아보지 않았는가?”

 

진자는 왕의 뜻을 받들어 무리를 모아 서울의 마을들을 두루 찾아 다녔다. 영묘사의 동북쪽 길 곁 나무 아래에 화장을 곱게 하고 용모가 수려한 소년이 노닐고 있었다. 그 소년을 마주 대하자 진자는 깜짝 놀라며 감탄했다.

 

이 분이 미륵선화다!”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도령의 집은 어디 있는가요? 성을 알고 싶은데.”

 

그 소년은 대답했다.

 

저의 이름은 미시(‘미시의 음사로 현음을 따라 미시라고 해 두었으나, 기실 자는 향찰에서 음으로 많이 씌었다. 따라서 미시, 미리, 미르정도로 읽는 것이 정상임)라고 합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제 성은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에 진자는 그 소년을 가마에 태워 대궐로 들어가 왕에게 접견시켰다. 왕은 그 소년을 경애해 마지않으며 국선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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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시 화랑은 낭도들에 대한 화목이며, 그리고 예의며 교화가 보통 화랑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풍류가 세상에 빛난 지 거의 7, 그는 홀연히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진자는 무척 슬퍼했다. 그러나 진자는 화현했던 그 미륵의 자애로운 은택에 멱 감고, 가까이 모셔 그의 맑은 교화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능히 스스로 뉘우쳐 정성껏 도를 닦아서 만년에 그 역시 종언을 알 수 없이 되었다.

 

이 미륵선화 미시랑의 일을 두고 설자는 말하기를,

미는 미와 그 음이 서로 가깝고, 시는 역과 그 모양이 서로 비슷하므로 그 둘 사이의 근사한 점에 가탁(이 설자의 설은 자가 음으로 쓰임을 모른 데서 온 잘못일 것임)하여 어희를 한 것이다. 대성이 유독 진자의 정성에만 감동된 것이 아니라 또 이 땅과 인연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종종 나타났던 것이다.”

라고 했다.

 

지금 나라 사람들이 신선(화랑, 구선을 가리킴)을 가리켜 미륵선화라 부르고, 무릇 매개하는 사람을 미시라고 하는 것 등은 모두 미륵불로 말미암은 유풍이다. 그리고 진자가 미시랑을 만났던 영묘사의 동북쪽 길 곁의 그 나무를 지금은 견랑이라 이름하고 있다. 또 속언으로는 그 나무를 사여수’(인여수라고도 함)라고 하기도 한다.

찬한다.

 

선화 찾아 걸음걸음 그 모습 우러르며,

이르는 곳마다 가꾸었던 한결같은 공이여!

홀연히 봄이 가 버리매 찾을 곳 없더니(진자가 수원사 절문 밖에서 한 도령을 우연히 만났다가 조금 뒤 나가 보았더니 그 도령이 사라져 버린 사실을 말함)

뉘라서 알았으랴 잠깐 만에

상림이 붉은 줄을(상림은 천자의 정원을 말한다. 이 구절은 미시랑이 왕의 두터운 은총을 받은 사실을 읊은 것임).

 

- 끝 -

 

<<삼국유사>>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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