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불산과 굴불산 및 만불산>
죽령 동쪽 100리쯤의 지점에 우뚝이 버티고 선 한 산이 있다.
진평왕 즉위 46(624)년, 한 길 입방의 커다란 돌이 하나 하늘에서 그 산 꼭대기로 떨어졌다. 사방 여래가 조각되어 있었고 그 조각들은 붉은 빛깔의 사포로 둘러싸여 있었다.
왕은 그 소실을 듣고 현지로 가서 여래가 조각되어 있는 그 돌을 우러러 경의를 표했다. 드디어 그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대승사(경상북도 문경군 산북면 사불산에 있던 절)라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름이 망실 되었지만, 연경(법화경의 다른 이름)을 외는 한 비구를 청해다 그 절을 맡게 하고 항상 그 돌을 깨끗하게 보존해 왔으며 향화를 끊이지 않았다. 그 산을 역덕산 또는 사불산이라고 했다.
비구가 죽고 나서 그를 장사지낸 무덤 위에는 연이 돋아났다.
다음 경덕왕이 백률사(경주시 북쪽 소금강산에 지금도 남아 있다. 법흥왕 15년이 차돈의 교를 기념하기 위해 창건되었고, 처음에는 치추사라 했음)로 가는 길, 그 절이 있는 산 밑에 이르렀을 때 그곳 땅 속에서 창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은 땅을 파 보게 했다. 커다란 돌이 하나, 그 돌에는 사면을 둘러가며 사방불(동방 향적세계의 아축불, 남방 환희세계의 보상불, 서방 안락세계의 무량수불, 북방 연화장엄세계의 미묘성불을 말함)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굴불사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와전되어 ‘굴석’이라고들 한다.
경덕왕은 당나라 대종 황제가 불교를 무척 숭상한다는 소식이 들었다. 왕은 장인을 시켜 5색의 모직물을 짜게 했다. 그리고 심단목으로 조각하고 명주며 미옥들을 들여 높이 한 길 남짓의 산을 조형해 내어 그 5색의 담 위에 안치했다.
그 산에는 험한 바위며 기괴한 돌들이 있고, 그리고 시내며 동혈이 있어 구역을 짓고 있었다. 구역마다 가무기악과 여러 나라 산천의 형세가 본떠져 있어 미풍이 불어들면 벌이며 나비가 나돌고 제비며 참새가 날아 어렴풋이 바라보노라면 그 진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가운데에다 1만의 불상을 안치했는데 큰 것은 한 치 입방을 넘었고 작은 것은 8, 9푼쯤이었다. 그 불상들의 머리가 어떤 것은 큰 기장 이삭만하고 어떤 것은 콩 반쪽만 했다.
곱슬상투며 흰 터럭에 미목이 선명하고, 얼굴이며 몸매의 구석구석이 뚜렷이 다 갖추어져 있어 그저 방불하다고나 할 수 있을 뿐, 이루 다 묘사해 낼 수가 없었다. 이렇게 1만의 불상을 안치했으므로 그 산을 ‘만불산’이라 이름 지었다.
다시 금옥을 조각하여 유소번개(5색의 수실이 달린 깃발과 불상을 덮는 양산)를 만들고 암라며 담복(인도 등지에서 자라는 나무를 일컬음) 나무들이 그 꽃이며 열매를 만들어 놓아 사뭇 으리으리했다.
그리고 누각이며 전각정자들도 세웠는데 모두 크기야 비록 자그마하나 그 만들어진 품은 하나하나 약여했다. 앞에는 둘러 돌아가는 모양으로 천 여 개의 비구들을 만들어 세웠고, 아래에는 세 개의 자금종을 배열했다.
그 종들에는 모두 종각이 딸렸고 포뇌(바다에 산다는 짐승으로, 본래 경어가 포뇌를 치려면 문득 크게 비명을 지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소리를 크게 울려’라는 뜻에서 흔히 이 포뇌의 모양을 만들어 종위에 붙이고 경어 모양의 종채로 침)를 만들어 붙였다. 그리고 경어 모양의 종채도 만들어 달았다.
바람이 불어 종이 울리면 빙 돌아가는 모양의 그 중들은 일제히 엎드려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그럴 땐 은은히 독경 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니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관건은 종에 있었다.
이름을 만불이라고 붙이기는 했으나 기실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었다. 만불산이 완성되자 사자를 보내어 당 대종에게 바쳤다. 대종은 보고서 ‘신라의 솜씨는 하늘의 조화이지 사람의 솜씨가 아니다’라고 찬탄했다.
그리고 구광선을 그 산의 바위 사이에 꽂아 두고 그것을 불광이라 했다.
4월 8일 양가의 중들을 대궐 내의 도량에 불러들여 만불산에 예를 드리게 하고, 불공삼장(‘삼장’은 원래 경장, 율장, 논장으로 불교 전적의 총칭. 삼장의 내용을 잘 알거나 번역한 승려를 가리켜 삼장이라고도 한다. 여기 불공삼장은 북인도 바라문의 아들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그 숙부를 따라 남양의 여러 나라로 떠돌아다니다가 자바에서 금강지삼장의 제자가 되고, 당나라 현종 9(720)년, 16세 때 스승을 따라 중국에 와서 경론 번역에 종사하며 밀교의 선전에 힘쓴 사람임)에게 명하여 밀교의 진언을 1천 번 엽송하여 경축하게 했다. 보는 사람이면 모두 그 교묘함을 탄복했다.
찬한다.
하늘은 만월 같은 사방불을 마련했고,
땅은 명호를 하룻밤 사이에 솟쳐 올렸네.
묘한 솜씨는 다시,
분주스레 만불을 조각해 냈으니,
진풍(불교를 가리킴)이 두루 하늘과 땅과 사람에 펴지리.
- 끝 -
<<삼국유사>>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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