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왕의 도교 신봉에 보덕사는 암자를 옮김> - 1/2
<고려본기>의 기록이다.
고구려 말기, 당나라의 고조, 태종 연간에 고구려 사람들이 다투어 오두미교(도교를 가리킨다. 처음에는 신도들에게 쌀 5두씩을 받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도교는 후한의 장도릉이 부적, 주술 따위를 사용하는 인간 신앙으로 시작하여 북위의 구겸지에 이르러 도교 사상의 창도자인 노자를 받들어 교조로 하고, 장도릉을 대종으로 하면서 도료란 명칭이 비로소 성립되었고, 당나라에 들어와 성행되었음)를 신봉했다. 당 고조가 이 소식을 듣고서 도사를 파견하여 천존상(도교에서 천신을 일컬어 천존이라 한다. 천시천존, 앙보천존 따위가 있음)을 보내어 오고, 그리고 <도덕경>(공자보다 선배인 노자의 저서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 않음. 도가 사상의 취지가 담긴 책으로, 일면 ‘노자’니 ‘경’자가 붙은 것은 후세 도교에서 이용한 데서 유래한 것임)을 강설하게 했다. 왕과 백성들은 그 강설을 들었다. 이것은 바로 제27대 영류왕 즉위 7년 당 고조 7(624)년의 일이었다.
그 이듬해에는 고구려에서 당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불교와 도교를 연구해 오게 했다. 당나라 황제(당시 당나라 황제는 고조임)는 허락했다.
보장왕이 즉위(642)(정관 16년 임인년에 즉위, 즉 당나라 태종 16년)하자 역시 유, 불, 도의 3교를 동시에 흥성하도록 하려 했다. 당시 총애 받는 재상 개소문은 왕을 설유하여 고구려에 유교와 불교는 다같이 성하나 도교만이 성하지 못하다고 하여 당나라로 사신을 특파하여 도교를 탐구해 오게 했다. 그때 보덕화상은 반룡사(평안남도 용강군에 있었던 절)에 있으면서 사도가 정도(여기서 사도는 도교를, 정교는 불교를 가리킴)에 맞서면 국가의 장래가 위태해질 것을 걱정하여 누차 왕에게 진언했으나 들어주지를 않았다. 그러자 보덕화상은 신통력을 써서 반룡사의 방장(절의 삼지가 거처하는 방)을 날려 남쪽으로 완산주의 고대산에 옮겨가 거처했다. 당 고종 원년, 즉 보장왕 즉위 9(650)년 6월(본전에는 건봉 2년 정묘년 3월 3일리라고 했음)의 일이었다. 그 뒤 오래지 않아 고구려는 망했다(총장 원년 무진에 나라가 멸망했으나 경술년으로부터 19년이다. 총장 원년은 당나라 고종 19(668)년, 경술년은 고종 원년을 가리킴).
지금의 경복사에 있는 ‘비래방장’이 바로 보덕화상이 날려 온 방장이다.
이에 대해 읊은 이자현의 시가 절에 남아 있고, 김부식이 쓴 전기가 세상에 나돌고 있다.
<당서>를 보면 위의 사건에 앞서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의 요동 땅을 정벌하러 왔을 때 그 휘하에 양명이란 비장이 있었다. 전쟁이 불리하여 양명이 전사하면서 이러한 맹세를 하고 죽었다.
“내 반드시 저 나라(고구려)에 다시 태어나 총신이 되어 나라를 망하게 하고 말리라.”
개소문이 정권을 독점함에 이르러 성씨를 ‘개’씨라 했다. 바로 ‘양명’의 재현(‘양’과 ‘명’자를 합하면 개소문의 성인 ‘개’자가 됨)인 것이다.
<고구려고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수나라 양제는 그 8년, 즉 고구려 제26대 영양왕 즉위 23(612)년에 30만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쳐들어왔다. 양제 10년 10월에 고구려 왕(때는 제26대 영양왕 즉위 25(614)년이었음)은 양제에게 글을 보내어 항복을 빌었다. 그때 어떤 한 사람이 품속에다 조그만 강궁을 몰래 간직하고서 국서를 가지고 가는 사자를 따라 양제가 머물고 있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 양제가 고구려의 국서를 받아 읽는 사이에 그 사람은 품속의 강국으로 쏘아 양제의 가슴팍에 맞혔다.
양제는 구사를 돌이키며 그 휘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천하의 주인으로서 몸소 일개 소국을 정벌하다가 이로움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니 실로 만대의 웃음거리다.”
우상 양명이 있다가 이렇게 아뢰는 것이었다.
“제가 죽어서 고구려의 대신으로 태어나겠습니다. 그래서 꼭 멸국 시키어 제왕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양제가 죽고 난 뒤, 양명은 고구려에 태어났다. 나이 열다섯 살, 총명, 영걸스러웠다. 당시 무양왕(<국사>에 영류왕의 이름은 건무, 또는 건성이라 했는데, 여기서는 무양이라고 함은 알 수 없음)이 그의 뛰어남을 듣고 불러들어 신하로 삼았다. 그는 자칭하여 성을 ‘개’, 이름은 ‘금’이라 했다. 지위가 ‘소문’에까지 이르렀으니 소문을 곧 시중에 해당되는 직책(<당서>에는 개소문이 자칭 막리지라 했는데, 당나라의 관직명인 중서령과 같은 것이라 했고 <신지비사>의 서문에 의하면 ‘소문 대영홍이 서하다’하고 아울러 ‘주하다’ 했으니 ‘소문’이 직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전에는 ‘문인 소영홍이 서 하다.’ 라고 했으므로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음)이다.
- 다음 화에 계속 -
<<삼국유사>>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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