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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원성대왕 (元聖大王), 왕위의 음모, 호구룡, 당 황제의 여의주,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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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의 음모, 호구룡, 당 황제의 여의주> - 1/2

 

이찬 김주원이 처음에 상제가 되어 있을 때, 원성왕은 가간으로서 차재의 위치에 있었다.

 

차재의 위치에 있을 때의 어느 날 왕은 복두(귀인이 쓰는 모자)를 벗고 소립(흰 갓)을 쓰고 12현금을 들고서 천관사(지금의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일남리에 있었던 절로서 옛날 천관녀의 집이라 함)의 우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 사람을 시켜 해몽점을 쳐 보게 했다.

 

복두를 벗은 것은 관직을 잃을 징조입니다. 가야금을 든 것은 목에 칼이 씌워질 징조입니다. 그리고 우물에 들어간 것은 옥에 들어갈 징조입니다.”

 

왕은 이 해몽을 듣고 근심에 빠져 두문불출했다.

 

그때 아찬 여삼(어떤 책에서는 여산이라고 했음)이 찾아와 면회를 요청했다. 왕은 병이 났다는 필계로 면회를 사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여삼 아찬은 재차 한번 만나고 싶다고 요청해 왔다. 그제사 왕은 허락했다.

 

아찬은 들어와 공이 무슨 일을 꺼리기에 두문불출이냐고 물었다. 왕은 그 점몽의 사유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왕의 얘기를 듣고 난 여삼은 일어나 절을 하면서 말했다.

 

이것은 좋은 꿈입니다. 공이 만일 대위(왕위를 가리킴)에 올라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공을 위해 내 풀어 드릴리다.”

 

왕은 이에 시종하고 있던 사람을 물러가 있게 하고 여삼에게 해몽을 청했다.

 

복두를 벗은 것은 자기 위에는 아무도 없게 됨을 말합니다. 소립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입니다. 12현금을 든 것은 12세손(<삼국사기>에 의하면 원성왕은 내물왕 12세손이라고 함)의 대를 전해 받을 징조입니다. 그리고 천관정에 들어간 것은 대궐에 들어가게 될 상서입니다.”

 

왕은 말했다.

 

내 위에는 주원이 있는데 어찌 상위에 오를 수 있겠소?”

 

여삼은 알려 주었다.

 

비밀리 북천신에게 제사를 드려 두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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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그대로 따라했다.

그 뒤 오래지 않아 선덕왕은 붕어했다. 조정의 사람들이 상재의 자리에 있는 김 주원을 받들어 왕으로 세우려고 그를 왕궁으로 맞아들이려 했다. 그런데 그의 집이 북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북천의 냇물이 불어서 건너올 수가 없었다. 이 기회에 왕이 먼저 대궐에 들어가 즉위했다. 상재 김주원의 당여들도 모두 와서 부닐고 새로 등극한 임금에게 하례를 올렸다.

 

이렇게 등극한 임금이 원성대왕이다. 이름은 경신, 심씨였다. 전날에 꾸었던 길몽 그대로 맞아 왕이 된 것이다. 주원은 명주(지금의 강릉을 가리킴)로 퇴거해 갔다. 왕이 등극했을 때는 일찍이 길몽을 풀어 왕의 등극을 예언했던 그 아찬 여삼은 이미 죽고 없었으므로 그 자손을 불러 벼슬을 내렸다.

 

원성왕의 손으로 다섯 사람이 있었다. 혜충태자와 헌평태자와 예영 잡간과 그리고 대룡부인, 소룡부인이 그들이다.

 

원성대왕은 진실로 인생 궁달의 변전을 알았다. 그래서 <신공사뇌가>를 지었다.

 

왕의 아버지는 대각간 효양, 그는 조종의 만파식적을 전해 받아 왕에게 전해 주었다. 왕은 그것을 얻게 되었으므로 두터이 천은을 입었고 그 덕이 멀리 빛났다.

 

당 덕종 7(756), 즉 왕 증위 21011, 일본 왕 문경(<일본제기>에 의하면 제55대 문덕왕이 이 문경인 듯하다. 그 밖에 달리 문경이란 왕은 없다. 어떤 책에서는 무덕왕의 태자라는 말도 있음)이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다가 신라에 만파식적이 있어 그것이 군사를 물리친다는 소문을 듣고서 사자를 보내 금 50냥으로써 그 피리를 요구해 왔다. 왕은 일본 사자에게,

나는 윗대 진평왕 때의 그것이 있었다고 들었을 뿐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고 했다.

 

그 이듬해 77, 일본 왕은 다시 사자를 보내어 금 1천 냥으로써 그 만파식적을 요구해 왔다.

 

과인이 그 신물을 얻어 보기만 하고 돌려보내리다.”

 

사자가 전하는 일본 왕의 이 같은 요구에 왕은 역시 전과 같은 답변으로 거절하고는 은 3천냥을 그 사자에게 주고 금은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8월에 일본 사자가 돌아가자 그 피리를 내황전에 간수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삼국유사>>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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