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의 한 전형> - 2/2
죽지랑의 아버지는 진덕왕 때의 술종공, 그가 삭주도독사(삭주는 지금의 춘천 방면)로 임명되어 임지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때 삼한(막연히 한반도를 가리키는 명칭)에는 병란이 있어 기병 3천명을 호송했다. 부임 행차가 죽지령에 이르니 한 거사가 그 고갯길을 닦고 있었다.
술종공은 그것을 보고 탄미했다. 거사 또한 술종공의 위세가 혁혁함이 마음에 들어 두 사람은 서로 마음에 감응을 받았다.
술종공이 삭주의 임소에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난 어는 날 밤, 죽지령의 길을 닦아 주던 그 거사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술종공의 아내 역시 꼭 같은 꿈을 꾸게 되어 놀라움은 한층 더했다. 이튿날 술종공은 사람을 보내어 그 거사의 안부를 물어 보았다.
그곳 사람이 하는 말이 거사는 며칠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는 그 거사의 죽음을 따져 보니, 바로 술종공 부부가 거사가 방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꿈꾼 그날이었다.
술종공은,
“아마 거사가 우리 집에 티어나려나 보다.”
하고 다시 군졸을 보내어 죽지령 위의 북쪽 봉우리에다 거사의 장례를 지르고 돌로 미륵을 만들어 그 무덤 앞에 안치 했다.
술종공의 아내는 거사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그 꿈을 꾼 날로부터 임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이름은 거사가 길을 닦아주던 그 고개의 이름을 따서 ‘죽지’라 했다. 죽지는 자라자 벼슬길에 올랐다. 그는 김유신과 더불어 부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그리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문, 4대의 조정에 대신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처음에 득오가 죽지랑을 사모하여 읊은 노래(지금은 <모죽지랑가>라 불리고 있음)가 있다.
간 봄 그리매 모든 것이 설이 시름하는데,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 주름살을 지니려 하옵네라.
눈 돌이킬 사이에나마 만나 뵙도록 (기회를) 지으리이다.
낭이여, 그릴 마음의 녀올 길이
다북쑥 우거진 마을(다북쑥 우거진 마을‘의 원문은 ‘봉차질항’. 이 구절을 조지훈은 한자 숙어 고리의 이두아역으로 보아 ‘무덤’의 의미로 해석했고, 그것은 <모죽지랑가>를 양주동과는 달리 죽지랑의 죽은 뒤 득오의 추모만가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 바 있는데, 이 견해가 타당하다. 따라서 ‘잘 밤’이란 말은 곧 한자어 장면 장야에 당할 말로서, ‘죽음’, ‘죽어 무덤에 묻힘’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이 시가의 후사구는 ‘머지않아 낭의 무덤 곁으로 함께 묻혀 가오리’의 취지로 해석됨)에 잘 밤이 있으리이까.
- 끝 -
<<삼국유사>> 제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