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 통일과 김유신 장군> - 3/6
신라의 태종은 백제국에 온갖 괴상한 변괴가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듣고는, 왕 즉위 7(660)년에 그 아들 인문을 당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군사를 청하게 했다.
당나라 고종은 좌호위대장군 형국공 소정방을 신구도행군 총관으로 임명하여 좌위장군 유인원과 좌호위장군 풍사귀와 그리고 좌호위장군 방효공 등을 막료로 하여 13만(<향기>에는 군졸이 12만 2천 711명, 배가 1천 900척이라 했는데 <당사>에는 자세히 적지 않았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정벌하도록 했다. 한편 신랑 왕 춘추를 우이도행군 총관으로 삼아서 신라군을 거느리고 자기 나라 군사들과 합세하게 했다.
소정방은 군사를 이끌고 성산(곧 성산이므로 지금의 중국 산동성 문등현)에서 바다를 건너 신라구의 서쪽 덕물도(지금의 덕적도)에 이르렀다. 신라왕은 장군 김유신으로 하여금 정병 5만을 거느리고 진격케 했다.
백제의 의자왕은 나, 당 양국의 군사가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서 뭇 신하들을 모아 놓고 전략을 물었다. 좌평 의직이 아뢰었다.
“당나라 군사들은 멀리 바다를 건너와 이곳 풍토에 익숙지 못하고, 신라군은 당나라의 원조를 믿어 상대를 가벼이 여기는 방자한 마음만 있어, 만약 당군의 불리함을 보게 되면 반드시 의구심이 생겨나 감히 민첩하게 진격해 오지 못할 것입니다. 때문에 먼저 당국과 결전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아뢰옵니다.”
달솔 벼슬에 있는 상영 등이 의직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군은 멀리서 왔기 때문에 빨리 결전하려는 태도로 임하겠으므로 그 민첩함을 당할 수 없습니다. 신라군은 이미 여러 번 아군에게 패전한 적이 있으므로 이제 우리의 군세를 바라보기만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계책은 마땅히 당군의 진로를 막아서 그 군사들의 기세가 둔화되길 기다리는 한편, 먼저 한쪽 부대로 신라군을 공격하여 그 예기를 꺾고 그러고 난 다음에 기회를 엿보아 병합하여 싸워 나가면 군사들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동시에 또한 나라를 보존할 수가 있습니다.”
왕은 머뭇거리며 어느 편을 좇아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자평 흥수는 죄를 얻어 고마며지(지금의 전라남도 장흥) 고을에 유배당해 있었다. 왕은 사자를 보내어 흥수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사세가 급박하오. 어쩌면 좋겠소?”
이 물음에 흥수는,
“대개 좌평 성충의 말과 같소.”
하고 그의 의견을 밝혔다. 대신들은 흥수를 불신하고 나왔다.
“흥수는 지금 죄를 지어 구속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는 임금을 원망하고 있으며 나라를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의 의견은 채택할 수 없습니다. 당나라 군사로 하여금 백강으로 들어오게 하여 강류를 따르느라 배를 병행시켜 진격할 수 없도록 하고, 신라군으로 하여금 탄현을 오르게 하여 지름길을 통하느라 말을 병행시켜 진결할 수 없도록 해두고 이 기회를 잡아 군사를 놓아 공격한다면 그들 적군은 곧 우리 속에 갇힌 닭과도 같이 될 것이며 그물에 걸린 고기와도 같이 될 것이옵니다.”
의자왕은 이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곧 당나라 군사가 이미 백강을 지났고, 신라 군사가 이미 탄현을 넘어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왕은 장군 계백을 시켜 결사대 5천 명을 이끌고 황산(지금의 충청남도 연산 황등 들)으로 나가 싸우게 했다. 계백은 5천 명의 결사대를 지휘하여 신라군과 네 번 접전하여, 모두 이겼다. 그러나 신라군에 비해 워낙 군사의 수효가 적었고 또 힘이 다하여 백제군은 마침내 패전했고, 계백은 전사했다.
신라군과 당군은 각기 진군, 양군이 합세하여 도성으로 들어오는 나루 어귀에 닥치어 강가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때 홀연히 새 한 마리가 나타나 소정방이 들어 있는 병영 위를 선회했다. 정방은 그것이 못내 꺼림칙하여 점쟁이에게 점을 쳐 보게 했다.
“필시 원수께서 꺾이실 징조입니다.”
라고 괘풀이를 해 왔다. 정방은 이 점괘를 듣고 검이 났다. 그래서 군대를 퇴각시켜 공격을 그만두려 했다. 이러한 정세를 보고 유신이 말했다.
“어찌 나는 새 한 마리 따위의 괴이한 짓으로써 천시를 어길 수 있겠소. 1천 명에 응하고 인심에 순하여 불인자를 치는 이 마당에 그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겠소?”
그리고는 신검을 빼어 그 새를 겨누었다. 새는 갈갈이 찢어져 그들 앞에 떨어졌다. 그제사 정방은 백가의 외편 기슭으로 나와 산을 둘로 진을 치고, 그러고 싸웠다.
- 다음 화에 계속 -
<<삼국유사>> 제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