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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어른들의 삼국유사) 금알지 (金閼智), 김알지, 탈해왕대 (脫解王代), 알지 신화, 신라 김(金)씨의 신화 서라벌. 반월성 서쪽 마을의 밤길을 호공은 걸어가고 있었다. 그 마을 곁에는 시림(시림을 구림이라고도 씀)이란 숲이 우거져 있었다. 길을 가다 호공은 그 숲속이 온통 환한 광명으로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걸음을 멈추고 호공은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그 숲속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숲속에 드리워진 그 구름 속에는 황금으로 된 궤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숲속을 밝히는 그 광명은 바로 그 황금 궤에서 번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 선 흰 닭 한 마리가 높이 울고 있었다. 호공은 궁궐로 달려가 이 광경을 당시 임금 탈해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곧 시림으로 거동했다. 그리고 궤를 열어 보았다. 한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발딱 일어났다. 그것은 마치 저 혁거세의 옛일.. 더보기
(어른들의 삼국유사) 노례왕 (弩禮王), 잇금의 전설, 이사금, 니사금, 치아가 많은 사람이 왕 박노례니질금(유례왕이라고도 한다. 에는 ‘유리니사금’으로 되어 있다. 니사금은 잇금의 음차임. ‘잇금’은 ‘사왕’, ‘계군’이라는 설도 있음)이 왕위에 오를 때의 일이다. 노례는 그의 매부 탈해와 함께 왕위를 놓고 서로 사양했다. 아무래도 쉽게 결정이 날것 같지 않아 탈해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대개 덕이 있는 사람은 이(이빨)가 많다고 한다. 우리 두 사람의 잇금을 세어 보아 이가 많은 사람이 왕위에 오르도록 하자.” 두 사람은 덕을 가져다 한 입을 물었다 내놓았다. 그리고는 덕에 찍힌 잇자국을 세어 보았다. 노례의 이가 더 많았으므로 그가 먼저 왕위에 올랐다. 그래서 칭호를 ‘잇금’이라 했다. 잇금이란 칭호는 이 노례왕에서 시작되었다. 노례왕의 즉위는 곧 유성공(중국 역대에서 왕망이 세운 .. 더보기
(어른들의 삼국유사) 동명 신화, 고구려, 졸본부여, 동명왕, 고주몽, 주몽 신화, 알 신화, 유화, 물의 신 하백의 딸, 해모수, 3/3 동명 신화. 3/3 주몽은 곧 이들 세 사람과 함께 동부여 땅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일부러 먹이를 적게 주어 여위게 하여 자기 차지가 되게 했던 그 준마를 타고서……. 태자 대소 등 여러 왕자와 금와왕의 여러 신하가 주몽의 탈출을 알아채고 곧 뒤따라 말을 달려 추격해 왔다. 주몽 일행은 엄수(지금의 어느 곳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에서는 ‘엄호수’라 하고, 그 주석에는 ‘일행 개사수, 지금의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고 했음)에 다다랐다. 앞을 가로막은 검푸른 강물을 건널 길이 막연했다. 추격하는 대소 태자와 일행은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주몽은 강물을 향하여 호소했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자 하백(물의 신)의 외손이다. 오늘 화를 피하여 도망해 오는 길, 쫓는 자들이 바로 뒤에 다가오고 있는데 .. 더보기
(어른들의 삼국유사) 동명 신화, 고구려, 졸본부여, 동명왕, 고주몽, 주몽 신화, 알 신화, 유화, 물의 신 하백의 딸, 해모수, 2/3 동명 신화. 2/3 얼마 후 유화는 닷되돌이 크기만 한 알 하나를 낳았다. 금와왕은 사람이 알을 낳은 것이 꺼림칙하여 그 알을 내다 버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 알을 개, 돼지에게 던져 주어 보았다. 그러나 그 알을 먹으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마소들이 다니는 길바닥에 내던져 보았다. 마소들도 그 알을 밟지 않고 피해 지나갔다. 다시 들판에다 갖다 버렸다. 이번에는 새와 또 짐승들이 내려와 그 알을 날개랑 몸으로 품어 주지 않겠는가. 왕은 하는 수 없이 그 알을 도로 가져다 깨뜨려 버리려 했다. 그러나 알은 깨어지지도 않았다. 결국 그 알은 어미 유화에게 되돌려 주었다. 어미 유화는 알을 포근히 품어서 따뜻하게 보호했다. 그 알에서 껍질을 벗기고 한 아기가 태어났다. 골격이며 외모부터가 영특하고 기이했다.. 더보기
(어른들의 삼국유사) 동명 신화, 고구려, 졸본부여, 동명왕, 고주몽, 주몽 신화, 알 신화, 유화, 물의 신 하백의 딸, 해모수, 1/3 동명 신화. 1/3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이다. 또한 지금의 화주 또는 성주 둥지라 하나 모두 잘못이다. 졸본주는 요동 방면에 있다. 국사 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구려의 시조는 동명성제로서 그의 성은 고씨, 이름은 주몽이었다. 북부여의 해루부는 그의 재상 아란불의 꿈에서 받은 천제의 명령에 따라 그의 나라를 동부여로 옮겼다. 그 후 부루왕이 죽고 태자로 있던 금와가 왕이 되었다. 금와가 왕위에 오른 뒤, 어느 날 그는 태백산 남쪽에 있는 우발수 강가를 지나다 아리따운 한 젊은 여인을 만났다. 금와왕은 그 여인에게 다가가서 웬 여자인가를 물었다. 왕의 물음에 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본시 물의 신 하백의 딸입니다. 이름은 유화(편의 주석에는 유화의 두 동생의 이름이 ‘선화’와 ‘위화’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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