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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자장정률(慈藏定律), 자장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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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 계율을 확정하다> - 3/3

 

태백산의 칡덩굴이 서리고 있는 곳에서 다시 만나리라.”

 

이렇게 알려 주고 문수보살은 사라져 버렸다. 자장은 태백산으로 가서 그 칡덩굴이 서리고 있는 곳을 찾았다. 어느 나무 아래에 커다란 구렁이가 몸을 서리고 있는 걸 발견하고 자장은 그의 시종자에게 말했다.

 

이곳이 이른바 칡덩굴이 서리고 있는 곳이니라.”

 

그 자리에다 석남원(지금의 정암사)을 세우고 문수보살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번은 가사가 남루한 늙은 거사가 죽은 강아지를 담은 칡삼태기를 메고 와서 자장의 시종자에게 말했다.

 

자장을 보려고 왔다.”

 

시종자는 대꾸했다.

 

스승님을 받들어 온 이래로 우리 스승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대는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는데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미치광이 말버릇을 하는가.”

 

그 거사는 다시 말했다.

 

다만 네 스승에게 고하기나 해라.”

 

드디어 시종자는 들어가자 자장에게 고했다. 자장은 깨닫지를 못하고 그의 시종자에게 말했다.

 

아마 미치광인가 보다.”

 

자장의 제자는 밖으로 나가 그 남루 방포의 거사를 꾸짖어 내 쫓았다. 그 거사는 말했다.

 

돌아가리로다! 돌아가리로다! 아상(사상의 한가지로, 오온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실제의 나가 있다고 하고, 또 나의 소유라고 집착하는 소견)을 지닌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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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그 칡삼태기를 거꾸로 털었다. 죽은 강아지가 튀어나와 곧 사자보좌로 벼냈다. 거사는 그 사자보좌에 올라 광명을 내비치며 가 버렸다.

 

자장이 듣고는 그제야 위의를 갖추어 광명을 좇아 그 남쪽 산마루로 달려 올라갔다. 그러나 이미 아득히 사라져가고 있어 따를 수가 없었다. 자장은 마침내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화장하여 유골을 굴속에다 안치했다.

 

자장은 세운 절과 탑이 모두 10여 군데인데 그 절이며 탑을 세울 때마다 반드시 상서로운 이적이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시주해 오는 사람들이 성시를 이룰 지경이어서 며칠 안 되어 절이며 탑들이 낙성되곤 했다. 자장율사가 쓰던 도구며 가사, 장삼들은 당나라 태화지의 용이 바친 오리 모양의 목침과 그리고 석족께서 입으셨던 가사와 함께 통도사에 보존되어 있다.

 

헌양현(지금의 언양을 가리킴)에 압유사란 절이 있으니, 그것은 그 목침오리가 일찍이 그곳에서 놀아, 이적을 나타냈던 일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원승이란 중이 있어 자장율사에 앞서 당나라로 유학했다가 함께 고국에 돌아와 자장이 율부를 넓히는 데 조력했다고 한다.

 

이를 찬한다.

 

일찍이 청량산에서 꿈을 깨고 돌아오니,

칠편삼취(‘7은 곧 ‘7이니 부처의 제자를 일곱으로 나눈 것이요, ‘3는 곧 3취 쟁계를 일컫는 것이니 대승보살의 계법임)가 일시에 열렸네.

승속의 복색 모양 있게 하려고,

동국의 의관을 중국(여기서는 당나라를 가리킴)에 본떠 말랐었네.

 

- 끝 -

 

<<삼국유사>>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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