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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이혜동진(二惠同塵), 혜숙법사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1/2 - 1/2 석혜숙은 화랑 호세랑의 낭도 중에 섞여 있다가 호세랑이 화랑의 자리를 사임하자 그 역시 물러나와 적선촌(지금 안강현에 적곡촌이 있음)에 20여 년을 은거하고 있었다. 당시 국선으로 구참공이란 이가 있어 하루는 그 쪽 교외로 나가 사냥질을 하러 다니고 있었다. 그때 혜숙이 길가에 나가 구참공의 말고삐를 잡고 이 못난 사람도 따라다니고 싶은데 좋은가고 청했다. 구참공은 허락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종횡으로 내달리며 옷을 벗어젖히고 서로 앞을 다투기도 하고 하여 구참공은 무척 즐거웠다. 모여 앉아 피로를 풀면서 그들은 사냥한 고기를 굽고 지지고 하여 분주히 먹어 댔다. 혜숙법사 역시 어울려 그 고기들을 먹으며 조금도 꺼려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렇게 한바탕 먹고 나자 혜숙사는 구참공 앞으로 다가가며 말.. 더보기
보양이목(寶壤梨木), 보양사,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조사 보양이 중국에서 법을 전해 받고 본국으로 돌아오느라 서해를 건널 때다. 용왕이 그를 용궁으로 맞아들이어 경을 염송케 하고, 금라가사 한 벌을 보시했다. 그리고 용왕은 겸하여 그의 한 아들 이목을 딸려 보내어 보양사를 모시고 가게하고서 다음과 같은 말로 보양사에게 당부하는 것이었다. “지금 3국이 소용하여 아직 불법에 귀의하는 군주가 없지만 만일 내 아들과 함께 본국의 작갑으로 가서 절을 짓고 있으면 적을 피할 수 있고, 또 수년이 못되어 반드시 불법을 보호하는 어진 군주가 나와 3국을 평정할 것이다.” 보양사는 용왕과 작별하고 돌아와 이 동리에 이르렀다. 그때 홀연히 한 노승이 자칭 ‘원광’이라 하면서 인궤를 안고 나타나 그것을 보양사에게 전수하고는 사라졌다(원광은 진나라 말기에 중국에 들어갔다. .. 더보기
원광서학(圓光西學), 원광법사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5/5 - 5/5 “불교에 보살계가 있어 그 조항들이 열 가지가 있지만 그대들은 남의 신자가 된 몸이라 아마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이제 세속의 다섯 가지 계가 있으니 그것들은 이렇다. 그 첫째는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써 하라’, 둘째는 ‘어버이를 섬기되 효도로써 하라’, 셋째는 ‘벗을 사귐에 믿음이 있으라.’, 넷째는 ‘싸움에 임하여 물러서지 말라’, 그리고 다섯째는 산 것을 죽임에 가림이 있으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이를 실천하여 소홀히 하지 말라.” 귀신의 무리들은 말했다. “다른 것들은 알았습니다만 이른바 ‘산 것을 죽임에 가림이 있으라.’는 것만은 깨치지 못하겠습니다.” 원광법사는 설명해 주었다. “육재일(음력으로 매월 8, 14, 23, 29, 30일의 6일이 ‘육재일’이다. 이 6일은 사천왕.. 더보기
원광서학(圓光西學), 원광법사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4/5 - 4/5 11년간을 머물러 있으면서 널리 삼장에 통효하고 겸하여 유학까지 공부하여 진평왕 22년 경신(에는 이듬해인 신유년에 왔다고 함)에 법사는 고국으로 돌아올 것을 기도하자 마침 본국의 중국 조빙사가 왔기에 그를 따라 환국했다. 원광법사는 그 신령에게 감사를 드리고자 지난날 머물렀던 그 삼기산의 절로 갔다. 밤중에 신령은 역시 원광에게로 와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해륙 먼 길을 어떻게 다녀왔는가?” 법사는 말했다. “신령님의 크신 은혜를 입어 무사히 갔다 왔나이다.” 신령은, “나도 또한 법사에게 계를 주노라.” 라고 말했고, 이로 하여 생생상제(윤회윤생에서 서로 구제하자는 것)의 약속을 맺었다. 원광법사가, “신령님의 진용을 볼 수 있겠나이까?” 라고 청하자 신령은 이렇게 일러 주었다. .. 더보기
원광서학(圓光西學), 원광법사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3/5 - 3/5 다음, 동경 안일호장(‘안일’은 퇴직의 뜻, ‘호장’은 향직 이름임) 정효의 집에 소장되어 있는 고본 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원광법사전이 실려 있다. 원광법사의 속성은 설씨, 서울[경주] 사람이다. 당초 중이 되어 불법을 공부하던 중 30세 때에 조용히 수도할 생각으로 홀로 삼기산(지금 경상북도 안강 서남쪽에 있음)에 들어가 거처하고 있었다. 그 뒤 4년이 되어 한 비구가 역시 그 산으로 들어와 원광법사의 거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다 따로 난야(‘아란야’의 약칭. 수도에 적합한 정한처로 흔히 절을 일컬음)를 짓고 지낸지 2년, 그 위인이 강맹하고 주술을 닦기를 좋아했다. 어느 밤이다. 원광법사가 독좌하여 송경을 하고 있는데 홀연히 신령의 소리가 있어 법사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잘한다! 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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