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국유사

낭지승운(朗智乘雲), 보현수(普賢樹), 지통사와 낭지사 이야기, 삼국유사,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1/2

반응형

 

<구름을 타던 낭지, 그리고 보현수> - 1/2

 

삽량주 아곡현(삽량은 지금의 양주요, 아곡의 은 한편 서자로 쓰이기도 했고, 또는 구불‘, ’굴불이라고도 했음. 지금 울주에 굴불역이 있으니 아직도 그 이름이 쓰이고 있음. 삽량, 즉 양주는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임)에 있는 영취산에는 한 신통한 승려가 살고 있었다. 그 승려가 암자를 짓고 그 산에서 살아온 지가 여러 해였으나 고을에선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그 스님 또한 자신의 성명을 말하지 않았다. 항상 <<법화경>>을 강하고 있어 신통력이 있었다.

 

당 고종 12, 즉 문무왕 즉위 (661)년에 지통이란 사미가 있었는데 그는 본래 이량공의 집 종이었다. 승려가 되던 해 그의 나이 일곱 살, 그때에 한 까마귀가 그에게로 날아와 이렇게 짖었다.

 

영취산으로 가서 낭지의 제자가 되라.”

 

지통은 이 까마귀의 계시를 듣고 그 산으로 낭지를 찾아 나섰다. 영취산의 골짜기에 있는 어느 나무 아래에 와서 쉬고 있노라니, 홀연히 한 이인이 나타나 지통에게 말했다.

 

나는 보현대사(보현보살을 일컬음). 너에게 계품을 주려고 왔다.”

 

지통에게 계를 주고 나선 그 이인은 사라져 버렸다. 지통은 계를 받고 나서 심령이 확 트이고 지각이 원민해졌다.

 

다시 길을 갔다. 도중에 한 승려를 만났다. 지통은 그 승려에게 낭지 스님이 계신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 승려는 어째서 낭지를 찾느냐고 해 왔다. 지통은 그 신비한 까마귀의 일을 얘기했다. 지통의 얘기를 듣고 그 승려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반응형

 

내가 바로 낭지일세. 지금 막 이 당 앞에 역시 까마귀가 와서 신성한 아이가 스팀에게 투신하고자 곧 이곳으로 올 테니 나가 영접하도록 하시오.’라고 알리기에 이렇게 맞으러 나온 거라네.”

 

그리고는 지통의 손을 잡으며 감탄했다.

 

신령한 까마귀가 너를 깨우쳐 나에게 투신케 하고, 나에게 알려 너를 맞게 했으니 이 무슨 상서인가! 아마 이 산령이 몰래 베푸는 은근한 도움일 게다. 전해 오는 기록에 의하면 이 산의 산주는 바로 변재천녀(영가, 음악을 맡은 여신임. 무애의 변재가 있어 불법을 유포하여 수명증익, 원적퇴산, 재보만족의 이익을 준다고 함)라고 한다.”

 

낭지의 이 소리를 듣고 지통은 눈물을 흘리며 감탄했다. 그리고 낭지사에게 입문의 예를 드렸다. 조금 뒤 낭지사가 계를 주려 하자 지통은 보현대사에게서 계를 받은 사실을 말했다.

 

저는 골짜기 어귀에 있는 나무 아래에서 보현대사가 주시는 정계를 이미 받았나이다.”

 

낭지사는 탄복했다.

 

훌륭하다. 너는 이미 대사의 만분의 계(신사와 신여가 삼귀계를 받은 뒤에 1계를 받는 것을 ‘1분계’, 2계를 받는 것을 소분계’, 3, 4계를 받는 것을 다분계라 하는 데 대하여 5계를 모두 받는 것을 만분계라 함. 5계는 불교도 전체를 통해 지킬 계율로써 중생을 죽이지 마라, 거짓말을 하지마라, 술 마시지 마라가 그것)를 몸소 받았구나! 나는 출생 이래 조석으로 마음 닦기에 게으르지 아니하며 지성님을 만나 뵙기를 염원해 왔으니 아직도 지성님께의 감통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 너는 이미 직접 계를 받았으니 네가 나보다 훨씬 훌륭하다.”

 

낭지는 도리어 지통에게 예를 했다. 그리고 지통이 그 아래에서 보현보살로부터 계를 받았던 나무를 보현수라 명명했다. 지통은 낭지에게 법사가 이곳에 머문 지 얼마나 오래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낭지는,

법흥왕대의 정미년(법흥왕 즉위 14년임)에 처음으로 여기에 발을 들여 놓았으니 지금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고 했다. 지통이 그 영취산에 간 때가 바로 문무왕 즉위 원년이었으니까 계산해 보면 그때 이미 135년이나 되었던 것이다. 지통은 나중에 의상법사의 볍연에 나아가 도의 높은 경지에 이르러 불교의 현묘함 교화에 자못 이바지 했다. 이가 바로 추동기를 맡아 쓴 장본인이다. 원효대사도 반고사에 머물고 있을 때에 항상 낭지를 가 뵈었다. 낭지는 원효로 하여금 초장관문 및 안신사심론을 찬술하게 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삼국유사>> 제5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