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 명예를 피하다, 문수점>
고승 연회는 일찍이 영취산에 은거하여 매양 법화경을 읽으며 보현관행을 닦고 있었다. 뜰에 있는 연못에는 항상 연꽃 두어 송이가 피어 사철을 두고 시들지 않았다(지금 영취사 용장전이 연회의 구거임).
당시 국왕이었던 원성왕이 그 상서롭고 신기함을 듣고서 연회법사를 불러 국사로 받들려고 했다. 연회는 그 소식을 듣고서 암자를 버리고 둔적의 길을 떠났다. 서령의 바위를 넘어가노라니 한 늙은이가 밭을 갈고 있다가 연회사에게 어디를 가는 길이냐고 물어 왔다.
“나라에서 소문을 함부로 듣고서 나를 벼슬로 얽매려 들기에 그것을 피해 가는 길이오.”
그 늙은이는 듣고 나서 말했다.
“이 땅에선 법사가 지닌 가치를 팔 만도 한데 무얼 그리 수고롭게스리 멀리 가서 팔려고 하오? 법사야말로 매명을 진정으로 싫어하는 게 아니군.”
연회는 그 늙은이가 자기를 모욕하는 것이라 하여 늙은이의 말을 좇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갔다. 두어 마장쯤 더 가서 시냇가에서 한 노파를 만났다. 그 노파 역시 연회사에게 어딜 가는 길이냐고 물어 왔다. 연회는 앞서의 그 늙은이에게 했던 답변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노파는 앞에서 웬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연회는 한 늙은이가 있다가 내게 심한 모욕을 주기에 불쾌해서 그 말대로 따르지 않고 이렇게 오는 길이노라고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노파는 연회에게 알려 주었다.
“그 분은 바로 문수대성이지요. 그 말씀을 왜 듣지 않았소?”
이 말을 듣고 연회는 놀랍고 송구스러워 급히 그 늙은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마를 조아리며 뉘우침을 사뢰었다.
“성자의 말씀을 감히 듣지 않겠나이까! 이제 이렇게 되돌아왔나이다. 그런데 시냇가의 그 노파는 어떤 분이오리까?”
늙은이는 가르쳐 주었다.
“그분은 변채천녀지.”
말을 마치자 늙은이는 사라져 버렸다.
연회는 마침내 자기의 암자로 되돌아와 있었다. 조금 지나자 왕사가 연회를 부르는 조명을 받들고 왔다. 연회는 자기의 업연이 이미 국사의 작위를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제야 조명에 응하여 대궐로 갔다. 그리고 그는 국사로 봉해졌다(<<승전>>에는 헌안왕이 연회를 2조의 왕사로 봉하고, 호를 ‘조’라 했으며 함통 4년에 죽었다고 했는데 여기 원성왕대라고 한 것과는 서로 틀림.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가 없음).
연회법사가 늙은이를 감접 했던 곳을 ‘문수점’이라 이름하고, 노파를 만났던 곳을 ‘이니점’이라 불렀다.
그를 찬한다.
시중에선 어진 이가 오래 숨지 못하고
주머니 속의 송곳은 감싸기 어려운 것을
숨어 살자던 작정이 글러진 건 뜰아래 신기한 연꽃 때문
운산이 깊지 않아서가 아니었네.
- 끝 -
<<삼국유사>> 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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