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 신화> - 3/8
문득 가락국 앞 서남쪽 해성에서 묽은 빛깔의 돛을 걸로 붉은 빛깔의 깃발을 휘날리며 북쪽으로 향해 오는 배가 있었다. 망산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천간 등은 먼저 횃불을 올렸다. 배는 마구 내달아 와 앞을 다투어 상륙하려 했다. 승점에 있던 신귀간은 이 광경을 바라보고 대궐로 달려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듣고서 흔흔히 기뻐했다. 그리고 9간들은 보내어 좋은 배를 내어 영접해 오게 했다. 9간들이 즉시 대궐로 모셔 들이려 하자 왕후는 입을 열었다.
“나와 그대들은 평소 안아온 터수가 아닌데 어찌 경솔히 따라가겠소?”
유천간 등은 돌아가 왕후의 말을 전달했다. 왕은 왕후의 말이 그렇듯 여겨져 당해 관헌들을 데리고 대궐에서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산기슭으로 가서 만전(장막으로 친, 임금의 임시 거처를 말함)을 치고 기다렸다.
바깥쪽 별포 나루에서 왕후는 배를 매어두고 육지에 올라 우뚝이 솟은 산 언덕에서 쉬고 있었다. 거기서 왕후는 입고 있던 비단치마를 벗어 산령에게 예물로 드렸다. 그리고 왕후를 시종해 온 신한 두 사람이 있었다. 이름을 신보와 조광이라 했고, 그들의 아내 모정과 모량이 있었다. 노예들까지 아울러 20여 명의 사람이었다. 왕후가 가져온 화려한 비단이며 의상이며 금은 주옥이며 패물 노리개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었다.
왕후는 점차 행재소(왕이 임시로 머물러 있는 곳)로 접근해 왔다. 왕은 나가 맞았다. 그리고 함께 장막 안으로 들어왔다. 왕후를 시종해 온 신보, 조광이하 모든 사람들은 뜰 아래에 나아가 뵙고는 곧 물러나왔다. 왕은 해당 관원에게 명령을 내려 왕후를 시종해 온 두 신하들 부처를 인도하여 각각 다른 방에 들게 하고 그 이하 노예들은 한방에 각각 5, 6명씩 들게 하고는 맛좋은 음료를 주고 좋은 침구로 재우게 했다. 그리고 가져온 의복이며 천들이며 보화들은 많은 군졸들을 둘러 세워 지키게 했다. 비로소 왕과 왕후는 함께 침소에 들었다. 왕후는 조용히 왕에게 말했다.
“저는 아유타(인도의 나라 이름) 나라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 이름은 황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이는 열여섯 살입니다. 제가 본국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올해 5월 중의 어느 날 저의 부왕와 왕후는 저를 보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아비와 어미가 어젯밤 꿈에 함께 황천 상제를 뵈었단다. 상제의 말씀이 가락국의 임금 수로는 하늘이 내려 보내어 왕위에 나아가게 한 사람이니 이 사람이야말로 신성스러운 이다. 이제 새로 나라에 임하여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대들은 모름지기 공주를 보내어 짝을 짓도록 하라 하시고는 도로 하늘로 올라가셨단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상제의 말씀이 사뭇 귀에 쟁쟁하니, 너는 이 자리에서 곧바로 부모를 하직하고 그 곳으로 가거라.’고 하셨어요. 이리하여 저는 바다에 떠서 멀리 증조를 찾아 하늘을 옮아 아득히 반도를 좇아(중조는 곧 화조로 선인들의 약의 일종. 반도는 선인들이 먹는 복숭아. 증조를 찾아 반도를 좇아왔다는 것은 선계의 신선을 찾아왔다는 의미로, 곧 왕을 찾아왔다는 말이다. 왕은 종종 신선에 비유되었음) 이렇게 외람히 용안을 가까이 하게 되었나이다.”
왕은 응대했다.
“나는 나면서부터 자못 신성하여 공주가 멀리에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그래서 신하들이 왕비를 들일 청을 했으나 함부로 따르지 않았소. 이제 현숙한 그대가 스스로 왔으니 이 몸은 행복하오.”
왕과 왕후는 드디어 어울려 들었다. 두 밤 하루 낮이 지났다. 이제는 왕후가 타고 온 배를 본국인 아유타국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배에 딸린 사람은 모두 15명, 각각 쌀 10석과 베 30필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8월 1일에 본궁으로 수레를 돌렸다. 왕은 왕후와 함께 타고, 왕후를 시종해 온 신하들도 수레를 나란히 하고, 그리고 가져온 그 이국의 패물들도 모두 싣고서 서서히 대궐로 들어왔다. 그때 시간은 막 정오가 되려 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삼국유사>> 제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