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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어른들의 삼국유사) 탈해왕 (脫解王), 용성국의 왕자, 남해왕, 노례왕, 알에서 태어나다, 알 신화, 토함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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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해 신화>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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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해(‘토해니사금이라고도 쓴다. ’치사금, 음의 훈차자로, 따라서 치사금은 니사금과 같은 뜻) 잇금에 관한 남해왕 때(고보에는 탈해가 임인년에 왔다는 것은 잘못이다. 가까운 임인년이라면 노례왕의 즉위 초에서 뒤지는 때이므로 노례왕과 양위를 다툰 일이 있을 수 없고, 그 앞의 임인년이라면 헉거세 때이므로 탈해가 신라에 온 해가 임인년이 아니다. 여기서의 두 임인년은 혁거세 즉위 19(45)년을 가리킴)의 일이다.

 

어느 날, 가락국 앞바다에 배 한 척이 와 닿았다. 그 나라의 임금 수로왕은 신하와 백성들을 이끌고 북을 치며 나아가 배를 맞아들였다. 수로왕은 그 배를 자기 나라에 머물러 있게 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배는 곧 되돌아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배는 신라 동쪽 하서지촌(지금도 상서지촌, 하서지촌이란 마을 이름이 있음) 아진포 앞바다에 와 닿았다. 아진포 갯가에는 한 노파가 살고 있었다. 그 노파의 이름은 아진의선이라고 했다. 그는 바로 혁거세왕에게 해물을 진상하던 고기잡이 어미였다. 아진의선 노파는 어느 날 바다 쪽에서 들려오는 난데없는 까치들의 지저귐에 놀랐다. 바다 쪽을 바라보며 노파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바다에는 까치들이 모여들만한 곳이라곤 통 봐위 하나도 솟아 있는 게 없는데 웬일일까? 까치들이 저리 모여 우는 건…….”

 

노파는 곧 배를 끌어내어 까치들이 지저귀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까치들은 어떤 배 위에 모여들어 지저귀고 있었다. 노파는 그 까치들이 모여 지저귀는 배 곁으로 바싹 배를 대어 보았다. 배 안에는 궤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길이가 20자쯤, 폭이 13자쯤 되어 보였다.

 

갯가 수풀 밑으로 그 배를 끌어다 놓고서 노파는 그 궤 속에 무엇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흉한 일인지 길한 일이지 궁금했다. 노파는 하늘을 향해 손을 모았다. 그리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느님이시여! 이것이 흉한 일이오이까! 길한 일이오이까?’

 

잠시 동안 묵도를 올리고 난 뒤 노파는 비로소 궤를 열어 보았다. 궤 안에는 단정하게 생긴 한 사나이와 그리고 일곱 가지 보배와 노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노파는 그들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들이 노파의 집에 머물면서 대접을 받은 지 7일 만에, 그때서야 비로소 그 단정하게 생긴 사내아이는 노파에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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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본래 바다 건너 용성국(정명국 또는 완하국이라고도 하는데, ‘완화화하국이라고도 쓴다. 용성은 왜국의 동북쪽 1천 리 지점에 있음)의 왕자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스물여덟 용왕님들이 있었답니다. 그 용왕님들은 모두 사람의 태를 좇아 태어나와서는 대여섯 살 때부터 왕위를 이어받아 임금이 되었어요. 용왕님들은 온 백성을 잘 다스려 그들의 마음을 다 정직하게 해주었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여덟 종류의 혈통이 있어요. 그러나 그 혈통을 가리지는 않아요. 다 높은 벼슬자리에 오를 수 있답니다. 저의 아버지는 함달파왕이에요. 함달파왕은 적녀국이란 나라의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였어요. 그 왕비, 그러니까 저의 어머니는 말입니다. 오래도록 왕자를 낳지 못했어요. 그래서 왕자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지요. 그런데 7년 뒤에 그만 커다란 알 한 개를 낳고 말았어요. 아버지 함달파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의논을 했답니다. 모두들 사람으로 알을 낳는 것은 옛날에도 오늘날에도 없는 일로서 아무래도 좋은 징조는 아니라고들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커다를 궤를 만들어 그 때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저와 일곱가지 보배와 저를 모실 노예들을 넣어서 배에다 실어 바다에 띄웠답니다. 바다에 띄워 보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빌었답니다. 아무쪼록 너와 인연 있는 땅으로 흘러가서 나라를 세우고 집을 이루어 잘 살라고요. 저와 보배와 노예들은 실은 배가 그 용성국의 해안을 떠나자 홀연히 붉은 용이 나타나더니 배를 이곳으로 호위해 왔답니다.”

 

- 계속 -

 

<<삼국유사>>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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