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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왕의 도교

보장봉노(寶藏奉老), 보덕이암(普德移庵), 보장왕의 도교, 고구려의 연개소문,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2/2 - 2/2 개금은 왕에게 진언했다. “솥에는 세 개의 발이 있고, 나라에는 삼교가 있는 법입니다. 제가 살펴보니 나라 안에 단지 유교, 불교만 있고 도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왕은 개금의 말을 그럴싸하게 여기고 당나라에 요청했더니 당 태종은 서달 등 도사 8명을 보내 주었다(에는 무덕 8년 을유에 사자를 당나라에 보내 불교와 도교를 구하니 당나라 황제가 이를 허락했다고 했다. 이에 의거해 본다면 양명이 갑술년에 죽어 이 땅에 환생했다면 그 나이가 겨우 10여 세인데, 재상의 직위로 왕을 설득하여 사자를 당나라에 보내어 도교를 요청했다 하므로 그 연월일에 반드시 어느 한 곳의 잘못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둘 다 기록해 둔다. 무덕 8년은 당나라 고조 8(625)년, 갑술년은 수나라.. 더보기
보장봉노(寶藏奉老), 보덕이암(普德移庵), 보장왕의 도교, 고구려의 연개소문,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1/2 - 1/2 의 기록이다. 고구려 말기, 당나라의 고조, 태종 연간에 고구려 사람들이 다투어 오두미교(도교를 가리킨다. 처음에는 신도들에게 쌀 5두씩을 받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도교는 후한의 장도릉이 부적, 주술 따위를 사용하는 인간 신앙으로 시작하여 북위의 구겸지에 이르러 도교 사상의 창도자인 노자를 받들어 교조로 하고, 장도릉을 대종으로 하면서 도료란 명칭이 비로소 성립되었고, 당나라에 들어와 성행되었음)를 신봉했다. 당 고조가 이 소식을 듣고서 도사를 파견하여 천존상(도교에서 천신을 일컬어 천존이라 한다. 천시천존, 앙보천존 따위가 있음)을 보내어 오고, 그리고 (공자보다 선배인 노자의 저서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 않음. 도가 사상의 취지가 담긴 책으로, 일면 ‘노자’니 ‘경’자가 붙은 것은 후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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