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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내물왕(奈勿王)과 김제상(金堤上)(<삼국사기>에는 ‘박제상’으로 되어있음), 신라의 충신 김제상,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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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나는 충절> - 2/3

 

왕은 제상을 불러들여 그의 의향을 물어 보았다. 제상은 왕에게 재배를 드리고, 서슴없이 말한다.

 

저는 들었습니다. 임금에게 근심스러운 일이 있다면 그 신하가 명예롭지 못하고, 임금에게 명예롭지 못한 일이 있다면 신하는 그 일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만약 일의 어렵고 쉬움을 따진 뒤에야 행한다면 그것은 참다운 충성이 아니요, 죽을지 살지를 헤아려 본 뒤에야 움직인다면 그것은 용기의 결여입니다. 신이 비록 못난 사람이긴 하오나 명을 받들어 일을 수행하겠습니다.”

 

눌지왕은 제상의 그 충용을 거듭 찬미했다. 잔들 맞들어 술을 나누고 그리고 왕과 신하는 손을 맞잡고 작별에 임했다.

 

제상은 왕에게 명을 받은 즉시 동해의 물결을 헤치고 북쪽으로 뱃길을 잡았다. 고구려의 땅에 상륙하자 제상은 변장을 하고 잠입해 들어가 보해가 머물러 있는 처소를 찾아갔다. 보해를 만나 고구려 탈출의 계획을 짜고, 그리고 그 탈출의 시일을 서로 기약해 두고서 제상은 먼저 5월 보름날 고성 항만에 돌아와 배를 대어 놓고 기다렸다.

 

제상과 기약한 시일이 닥쳐오자 보해는 병을 핑계로 며칠을 조회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가 밤중에 고구려 왕성을 빠져나와 고성 바닷가를 향해 내달렸다.

 

장수왕은 보해의 도망을 알자 수십 명의 군사들을 보내어 곧 추격하게 했다. 그들 고구려의 군사들은 고성에 이르러 보해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해는 고구려에 억류당해 있을 때에 항상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어 왔으므로 그를 쫓던 고구려의 군사들은 그를 동정하여 살려 보내 주고 싶었다. 그들은 일제히 화살의 살촉을 빼 던지고, 그러고야 보해를 겨누어 쏘아 댔다.

 

보해는 마침내 죽음을 면하고 그리웠던 고향의 나라에 돌아올 수 있었다. 눌지왕은 보해를 만나게 되자 바다 건너 왜족의 나라에서 오랜 세월을 망향에 젖어 있을 그의 다른 아우 미해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마음으로 왕은 눈물을 흘리며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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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 몸에 한쪽 팔만 있는 것 같고, 한 얼굴에 한쪽 눈만 있는 것 같구료. 비록 한쪽은 얻었으나 다른 한쪽이 없으니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소?”

 

제상 역시 왕의 이 말을 듣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엔 또 하나의 결심이 섰다. 제상은 왕에게 하직하고 곧장 말을 몰았다.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율포(밤개) 바닷가로 내달렸다.

 

제상의 아내는 그의 남편이 왜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대궐에서 바로 율포로 갔다는 말을 듣고는 역시 말을 달려 뒤쫓았다. 그녀가 율포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제상이 탄 배는 이미 바다로 둥둥 떠가고 있었다. 제상의 아내는 목이 찢어져라 애절하게 부르짖었다. 제상은 다만 손을 흔들어 보일 뿐 배는 아물아물 하늘과 맞닿은 곳으로 사라져 가 버렸다. 제상은 왜국에 상륙하자 일단 거짓말을 했다.

 

나는 신라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라왕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나의 부형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도망쳐 왔지요.”

 

왜 왕은 제상의 말을 곧이듣고 그에게 집을 주어 안주케 했다. 제상은 왕자 미해공과 접촉하게 되자 항상 그를 모시고 바닷가를 노닐면서 고기잡이며 새 사냥질로 때를 기다렸다. 매양 잡힌 고기며 새 따위를 왜 왕에게 바치노라면 왜 왕은 무척 즐거워하고 제상에게 의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 날, 마침 새벽안개가 자욱이 끼어 덮인 날을 만나자 제상은 미해에게 나아갔다.

 

이런 날이 꼭 좋습니다.”

그렇다면 같이 떠나야지요.”

 

함께 탈출해야 한다는 미해의 말에 제상은 답변했다.

 

만약 저까지 가게 되면 왜인들이 알아채고 뒤쫓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 머물러 뒤쫓는 걸 막겠습니다.”

 

미해는 비창한 마음이 되었다.

 

지금 나는 그대를 친부형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 그대를 이 적지에 버리고 나만 혼자 돌아갈 수 있겠소?”

 

제상은 말했다.

 

저로선 이곳에서 공을 구해 내어 고국에 계신 대왕의 정회를 풀어 드릴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어찌 살기까지 바라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제상은 술을 가져다 미해에게 따라 드리고, 그리고 그때 왜국에 와 있던 신라 사람 강구려를 수행시켜 미해를 떠나보냈다.

 

- 다음 화에 계속 -

 

<<삼국유사>>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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