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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야 신화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 수로왕 신화, 허왕후, 아유타국, 6가야 신화, 구지가, 가락국가의 흥망성쇠 - 4/8 - 4/8 왕후는 중궁을 거처로 정했다. 시종해 온 신하들 부처와 사속들에게는 널찍한 두 집을 주어 나누어 들게 하고, 나머지 종자들은 20여 간짜리 빈관 한 채에다 사람수를 배정, 구별지워 들이어선 날마다 풍부한 음식을 주었다. 싣고 온 진기한 물건들은 내고에다 간수해 두고 왕후의 네 철 계절에 따른 소요에 당하도록 했다. 어느 날, 왕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구간들은 다 백관의 장들이나 그 직위며 명칭이 도시 촌스러워 결코 벼슬자리에 있는 귀인의 칭호라곤 할 수 없다. 혹 어쩌다 문명된 외국인이 전해 들으면 반드시 웃음거리가 되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 드디어 아도를 아궁으로, 여도는 여해로, 피도는 피장으로, 오도는 오상으로 고치고, 유수와 유천의 이름은 윗글자는 그냥두고 아랫자만 고쳐 각각 유공과.. 더보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 수로왕 신화, 허왕후, 아유타국, 6가야 신화, 구지가, 가락국가의 흥망성쇠 - 2/8 - 2/8 즉위 2(43)년 봄 정월에 수로왕은 ‘서울을 정해야겠다. 고 가궁의 남쪽 신답평(이는 고래의 한전으로서 새로 경작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답‘은 속자임)으로 나갔다. 사방으로 산악들을 바라보고 나서 왕은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은 여뀌 잎사귀처럼 협소하구나. 그러나 지세는 빼어나서 가히 16나한(빈두로파라타(Pindola-bharadvaja)를 위시한 16존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들은 부처의 교칙을 받고 이 세상에 영주하며 중생을 제도한다고 함)이 머무를 만한 땅임직도 한데 하물며 하나에서 셋을 이루고 셋이서 일곱을 이루었던 칠성(일곱 가지 정지로서 진리를 조견한 이들을 일컬음)이 살았던 땅이 진실로 여기에 부합됨에랴. 토지를 개척하여 터전을 열어 놓고 보면 마침내 훌륭하게 .. 더보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 수로왕 신화, 허왕후, 아유타국, 6가야 신화, 구지가, 가락국가의 흥망성쇠 - 1/8 가락국기 (문묘조의 대강 연간에 금관지주사 문인이 찬술한 것이므로 여기 초략하여 싣는다. 문묘조란 고려 11대 문종을 말하고, 대강은 요의 도종 연호 (1075년~1084)다. 그리고 금관은 곧 가락구의 도읍이었던 지금의 김해. 금관지주사는 그 김해 지상의 장관임) - 1/8 개벽한 이래로 이곳에는 아직 나라의 이름도 없었고, 또한 군신의 칭호 따위도 없었다. 그저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 등의 9간이 있을 뿐이었다. 이들은 곧 추장으로서 이들이 당시 백성들을 퉁소랬던 것이다. 그 백성들은 모두 100호, 7만 5천인이었다. 많이들 산야에 제각기 집단을 이루어 그저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갈아 밥 먹을 정도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후한 광무제 18..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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