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 수로왕 신화, 허왕후, 아유타국, 6가야 신화, 구지가, 가락국가의 흥망성쇠 - 4/8
- 4/8 왕후는 중궁을 거처로 정했다. 시종해 온 신하들 부처와 사속들에게는 널찍한 두 집을 주어 나누어 들게 하고, 나머지 종자들은 20여 간짜리 빈관 한 채에다 사람수를 배정, 구별지워 들이어선 날마다 풍부한 음식을 주었다. 싣고 온 진기한 물건들은 내고에다 간수해 두고 왕후의 네 철 계절에 따른 소요에 당하도록 했다. 어느 날, 왕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구간들은 다 백관의 장들이나 그 직위며 명칭이 도시 촌스러워 결코 벼슬자리에 있는 귀인의 칭호라곤 할 수 없다. 혹 어쩌다 문명된 외국인이 전해 들으면 반드시 웃음거리가 되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 드디어 아도를 아궁으로, 여도는 여해로, 피도는 피장으로, 오도는 오상으로 고치고, 유수와 유천의 이름은 윗글자는 그냥두고 아랫자만 고쳐 각각 유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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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 수로왕 신화, 허왕후, 아유타국, 6가야 신화, 구지가, 가락국가의 흥망성쇠 - 1/8
가락국기 (문묘조의 대강 연간에 금관지주사 문인이 찬술한 것이므로 여기 초략하여 싣는다. 문묘조란 고려 11대 문종을 말하고, 대강은 요의 도종 연호 (1075년~1084)다. 그리고 금관은 곧 가락구의 도읍이었던 지금의 김해. 금관지주사는 그 김해 지상의 장관임) - 1/8 개벽한 이래로 이곳에는 아직 나라의 이름도 없었고, 또한 군신의 칭호 따위도 없었다. 그저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 등의 9간이 있을 뿐이었다. 이들은 곧 추장으로서 이들이 당시 백성들을 퉁소랬던 것이다. 그 백성들은 모두 100호, 7만 5천인이었다. 많이들 산야에 제각기 집단을 이루어 그저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갈아 밥 먹을 정도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후한 광무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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