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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의 중국 유학 이야기

원광서학(圓光西學), 원광법사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2/5 - 2/5 공업이 이미 이루어지매 도를 동방으로 전해야 했다. 본국에서는 멀리 듣고서 글을 올려 원광의 송환을 빈번히 청해왔다. 수제는 칙명을 내려 원광을 두터이 위로하고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원광이 여러 해 만에 고국에 돌아가자 늙은이도 젊은이도 모두 환영했다. 신라왕 김씨(진평왕을 가리킴)는 그를 면대해서는 존경을 표하며 성인을 우러르듯 했다. 원광은 그 성품이 겸허 한정하고 인정이 많아 두루 사랑을 베풀었다. 그리고 말할 때는 언제나 웃음을 머금었으며 성냄을 얼굴에 나타내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 갖가지 국서들이 그의 흉금에서 나오매 온 나라가 극진히 받들었다. 모두들 그에게 치국의 방도를 위촉하고 교화의 일을 자문했다. 하여 그는 실제 조정의 귀현한 관리와는 다르면서 그에게 청탁은 위정자와 같았다.. 더보기
원광서학(圓光西學), 원광법사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1/5 - 1/5 제13권의 기록이다. 신라 황룡사(‘황룡사’의 와전된 기사)의 원광은 속성이 박씨, 본거지는 삼한, 즉 변한, 진한, 마한이다. 원광은 바로 진한 사람인 것이다. 대대로 해동에 살아 가문의 유서가 연면하고 그 사람은 도량이 크며 문장을 좋아했다. 도가와 유학을 섭렵했고 제자서와 사기를 토구했다. 문장의 재화가 한역에 울렸으나 학식의 풍부함에 있어선 오히려 중국에 부끄러웠으므로 마침내 그는 친척과 벗들을 작별하고 뜻을 해외로 분발했다. 25세에 배를 타고 금릉(지금의 남경)으로 갔다. 때는 바로 진나라 시대, 진나라는 문교의 나라로 일컬어졌으므로 원광은 전날에 쌓여온 의문들을 질문, 구명할 수 있었으며 도를 물어 요해할 수 있었다. 처음 원광은 장엄사의 승민의 제자에게 강론을 들었다. 원광은 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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