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물왕 썸네일형 리스트형 내물왕(奈勿王)과 김제상(金堤上)(<삼국사기>에는 ‘박제상’으로 되어있음), 신라의 충신 김제상,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3/3 - 3/3 미해를 도주시킨 뒤 제상은 미해가 거처하던 방으로 들어가 있었다. 날이 훤히 박자 미해를 시종 들던 왜인들은 미해를 살피러 왔다. 그들이 방으로 들어오려 하자 제상은 나가 그들을 제지시키면서 말했다. “어제 사냥질로 좀 뛰어다니시더니 몹시 피곤하신가 보오. 그래 아직 기침을 못 하고 계시오.” 한낮이 지나 해가 기울 때가 되어도 미해가 잠자리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시종들은 아무래도 수상쩍어 다시 와서 제상에게 물었다. 그때서야 제상은 태연히 대답했다. “미해공께서는 떠난 지가 이미 오랠세.” 시종들은 깜짝 놀라 왜 왕에게 달려가 고해 바쳤다. 왜 왕은 기마병들을 시켜 미해를 뒤밟아 쫓게 했다. 그러나 끝내 미해를 붙잡지 못했다. 그러자 왜 왕은 제상을 가두어 놓고 물었다. “너는 어째서 너희 .. 더보기 내물왕(奈勿王)과 김제상(金堤上)(<삼국사기>에는 ‘박제상’으로 되어있음), 신라의 충신 김제상, (어른들이 읽는 삼국유사) - 1/3 - 1/3 제17대 임금 내물왕 36(391)년, 왜 왕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왔다. 왜국의 사신들은 내물왕을 뵈옵고 아뢰었다. “우리나라 임금님이 대왕의 신성하시옴을 들으시고서 저희들로 하여금 백제의 죄과를 대왕께 성토하라 하셨습니다. 대왕께선 왕자 한 분을 보내시어 우리나라 임금님에게 성의를 보여주소서.” 이에 내물왕은 셋째 왕자 미해(‘미토회’라고도 쓴다 에는 ‘미사혼’이라 했고, 그가 왜국으로 간 것이 18대 실성왕 원년의 일로 되어 있음)를 왜국에 사신으로 보내었다. 그때 미해 왕자의 나이 겨우 10세인지라 언어 행동에 아직 부족한 점이 있었으므로 측근에 있는 신하 박사람을 부사로 딸려 보냈다. 왜 왕은 답례 차로 억류하고서 30년이 지나도록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내물왕의 다른 왕자 눌지는 신라.. 더보기 이전 1 다음